같은 동네, 같은 봄인데 유독 그 골목 앞집만 매년 3월이면 창을 닫아걸었다. 알레르기 내과에서는 꽃가루 알레르기라고 했고, 처방은 매년 같은 항히스타민제였다. 정작 그 골목에 왜 유독 재채기가 몰리는지, 골목 어귀에 서 있는 은행나무가 몇 그루인지, 그 나무들이 전부

같은 동네, 같은 봄인데 유독 그 골목 앞집만 매년 3월이면 창을 닫아걸었다. 알레르기 내과에서는 꽃가루 알레르기라고 했고, 처방은 매년 같은 항히스타민제였다. 정작 그 골목에 왜 유독 재채기가 몰리는지, 골목 어귀에 서 있는 은행나무가 몇 그루인지, 그 나무들이 전부 수나무인지를 물어본 사람은 없었다.
미국의 원예학자 토머스 오그렌은 이 질문을 30년 넘게 추적했다. 그가 만든 결론은 단순하지만 낯설다. 도시의 꽃가루 문제는 상당 부분 나무를 심을 때 내린 선택, 그중에서도 나무의 성별을 고르는 관행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은행나무나 물푸레나무, 뽕나무처럼 암수가 딴 그루인 자웅이주 수종은 관리자 입장에서 골치 아픈 존재다. 암나무는 가을이면 열매를 떨어뜨리고, 은행나무의 경우 그 열매가 발효되며 냄새를 풍긴다. 그래서 도시 가로수나 조경수를 고를 때는 열매를 맺지 않는 수나무 계통의 클론 묘목을 선호하는 경향이 실제로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국내에서도 은행나무 가로수의 악취 민원이 반복되며 암나무를 골라내거나 수나무 위주로 새로 식재하는 사례가 여러 지자체에서 보고된 바 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암나무가 없다는 것은, 그 지역 상공에 떠도는 은행나무 꽃가루를 받아 줄 암꽃이 없다는 뜻이다. 자연 상태의 숲이라면 암수 나무가 섞여 있어 꽃가루의 상당량이 근처 암꽃에 내려앉아 수정에 쓰이지만, 수나무만 남은 가로수길에서는 그 꽃가루가 갈 곳이 없다. 결국 더 멀리, 더 오래 공중에 떠다니다 사람의 코와 눈으로 향한다. 열매 민원을 줄이려던 조경 관행이, 알레르기 민원을 늘리는 결과로 이어진 셈이다.
오그렌은 이런 식물별 알레르기 유발 정도를 1부터 10까지 숫자로 매기는 오그렌 식물 알레르기 지수, OPALS를 고안했다. 화분(꽃가루)의 발생량, 입자 크기, 알레르기 유발 단백질의 강도, 개화 기간의 길이, 그리고 꽃가루가 바람을 타는지 곤충을 타는지를 종합해 점수를 매긴다. 풍매화, 즉 바람에 의존해 꽃가루를 퍼뜨리는 식물은 대체로 점수가 높고, 곤충이 꽃가루를 옮겨 주는 충매화는 대체로 낮다. 이 지표는 북미 조경 실무에서 이미 참고 기준으로 쓰이지만, 국내에는 아직 이름조차 낯설다.
한국의 화분 통계는 다른 방식으로 존재한다. 기상청은 봄가을이면 꽃가루농도위험지수를 발표하는데, 봄철 주요 원인은 오리나무·참나무류·소나무·자작나무 같은 수목화분이고, 가을철은 돼지풀·환삼덩굴 같은 잡초화분이 중심이다. 이 통계는 대기 중 꽃가루 농도의 위험도를 알려주지만, 정원에 무엇을 심을지 결정하는 데 필요한 수종별 비교 정보까지 제공하지는 않는다. OPALS의 수종별 비교 관점과 기상청의 국내 관측 데이터를 나란히 놓고 봐야, 비로소 우리 마당에 적용할 수 있는 그림이 완성된다.
편백과 삼나무는 일본에서 수입되어 조림된 이후 한국 화분증의 주요 원인으로 자리 잡았다. 두 수종 모두 풍매화이고 개화기가 길어 OPALS 기준으로도 높은 점수를 받는 부류다. 자작나무와 오리나무 역시 이른 봄 꽃가루 농도 조사에서 반복적으로 상위권에 오른다. 소나무는 꽃가루 발생량 자체는 많지만 입자가 상대적으로 크고 무거워 멀리까지 날리는 양이 적다는 점에서, 발생량만으로 위험도를 판단하면 안 되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풍매화보다 충매화를 우선하는가. 곤충이 꽃가루를 옮기는 식물은 꽃가루 입자가 무겁고 끈적여 공중에 오래 떠 있지 않는다. 화려한 꽃을 피우는 원예종 다수가 여기에 해당한다.
자웅이주 수종이라면 암그루를 포함했는가. 은행나무처럼 암수가 나뉘는 수종을 꼭 심어야 한다면, 수나무만으로 채우지 않고 암그루를 함께 두어 꽃가루가 갈 곳을 만들어 주는 편이 낫다.
가족의 알레르기 계절과 개화기가 겹치지 않는가. 봄에 유난히 심한 가구라면 이른 봄 개화하는 자작나무·오리나무·삼나무류를, 가을에 심한 가구라면 정원 인근의 돼지풀 같은 잡초 관리를 우선 점검해야 한다.
정원과 창문 사이에 완충 구간을 두었는가. 고위험 수종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면, 창문에서 먼 쪽에 배치하고 그 사이에 저위험 관목이나 생울타리를 두어 꽃가루가 실내로 직접 들어오는 것을 줄일 수 있다.
실내로 들여오는 절화나 화분까지 확인했는가. 정원의 문제만이 아니다. 국화나 백합처럼 실내에 두는 절화도 꽃가루 노출원이 될 수 있어, 마당과 거실을 함께 봐야 한다.
어떤 나무가 위험하고 어떤 나무가 안전한지는 흩어진 지식으로 존재해 왔다. 원예학 논문에는 있지만 조경 실무자의 언어로 정리되어 있지 않았고, 기상청 통계에는 있지만 정원 설계의 언어로 바뀌어 있지 않았다. 이 글의 부속 자료로 국내 정원·조경에 흔히 쓰이는 수종을 성별 구조·화분 매개 방식·개화 시기·위험도 순으로 정리한 체크리스트와, 가족의 알레르기 계절에 맞춰 무엇을 언제 조심해야 하는지 한눈에 보여주는 월별 꽃가루 위험 캘린더를 함께 준비했다.
나무 한 그루를 고르는 일은 미관의 문제만이 아니라 그 아래에서 숨 쉴 사람의 문제이기도 하다. 좋은 정원은 꽃이 많은 정원이 아니라, 그 꽃가루가 누구의 창문으로 가는지까지 헤아린 정원이다.
참고 자료 (에디터 노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