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최진범·최정민 — 오래된 시간에 건네는 헌정

40년 숲의 시간을 돌담과 반석, 수반으로 옮긴 두 정원 작가.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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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깊어진 숲의 시간과 시민의 수고에 감사를 전하는 헌정의 정원이다. 돌담을 쌓아 프레임을 세우고 그 아래 오래된 돌 포장을 깔았다. 그늘에는 반석을, 빛이 드는 자리에는 수반을 두었다. 경계는 일부러 흐렸다. 정원이 숲의 일부로 스며들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I. 시민을 위한, 시민에게 바치는 정원

정원의 출발점은 감사였다. 매헌시민의숲이라는 이름 안에 이미 들어 있는 두 단어, 시민과 숲을 그대로 정원의 주제로 삼았다.

“40년간 이어온 숲의 모습과 시민의 수고에 감사함을 느껴왔습니다.”
— 최진범, 정원 작가

그 감사를 헌정하는 정원을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마음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 두 사람이 오래 고민한 것은 40년의 시간적 층위와 시민의 수고를 어떻게 물리적으로 구현할 것인가였다. 답은 재료였다. 돌담을 쌓아 올려 프레임을 만들고, 그 아래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돌 포장을 깔았다. 그늘이 드리우는 숲 하부에는 반석을, 빛이 드리우는 곳에는 수반을 놓았다. 반석에 앉아 숲을 직접 바라볼 수도 있고, 수반에 비친 수관과 빛으로 숲을 간접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정원의 이름에 든 '결'과 '빛'은 그렇게 돌과 물로 옮겨졌다.

II. 경계를 흐리는 손

오래된 공원이라 나무들도 다 큰 나무뿐이었고, 벚나무도 아주 큰 것이 서 있었다. 첫 답사에서 최정민 작가가 받은 인상은 다른 대상지와 달랐다.

“다른 대상지에 비해 유독 이곳은 해가 잘 안 들고 울창하고 축축했습니다. 누가 봐도 오래돼 보이는 분위기였고, 그 느낌을 계속 끌고 가고 싶었습니다.”
— 최정민, 정원 작가

물이 고인 곳도 있었다. 그 느낌을 끝까지 끌고 가기 위해 소재도 오래돼 보이는 것들로 골랐고, 이질적인 식물은 자제했다. 최대한 원래 있던 것처럼, 숲에 녹아드는 방식으로 풀었다. 보통의 정원은 외곽 라인을 또렷이 잡는다. 이들은 반대로 경계를 애매하게 열어 두었다. 정원이 숲의 일부처럼 포함되기를 바랐고, 뒤쪽도 여유롭게 두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섞여 들어가도록 했다.

경계를 흐리는 일은 설계로 끝나지 않았다. 포장과 녹지 사이에 스틸엣지나 화강석 경계를 두는 대신, 포장과 녹지를 깐 뒤 손으로 흐려 애매모호하게 녹아들게 했다. 포장에는 일반 마사보다 갈색이나 붉은 기를 띤 마사를 써서 오래된 돌 포장과 결을 맞췄다. 숲과 만나는 자리에는 떨어진 낙엽을 최대한 끌어모으고, 멀칭도 바크만 까는 것이 아니라 부숙토와 바크를 섞어 기존 숲 하부처럼 깐 뒤 그 위에 다시 낙엽을 뿌렸다. 설계가 끝난 자리에서 시공의 손이 한 번 더 디자인을 한 셈이다.

시공을 다른 업체에 맡길지 직접 할지 두 사람은 오래 고민했다. 결론은 직접이었다.

“세부 디테일까지 만족하려면 직접 손이 닿아야 하는 성격입니다.”
— 최진범

숲과 만나는 경계부, 돌담의 라인, 반석과 수반의 위치. 그 하나하나를 현장에서 손으로 잡았다.

III. 프레임에 담긴 숲

입구는 한 군데로 정하지 않았다. 어디서든 들어올 수 있다. 처음 방문했을 때 안쪽에는 빛이 거의 들지 않고 중심부에만 빛이 쏟아졌는데, 그 자리를 액자처럼 보이게 하려고 나무를 양쪽에만 두고 가운데를 일부러 터 두었다. 앉은 돌담에 앉으면 뒤편 벚나무와 수반이 프레임 안으로 들어온다.

“여기 앉아 수반을 보며 차분히 생각할 수 있고, 봄에는 벚나무 풍경도 좋을 겁니다.”
— 최정민

반석은 앉거나 눕거나 올라가 뛰노는 모습을 상상하며 놓았다. 돌아다니면서 쉴 공간이 많지 않다고 느껴 앉은 벽도 최대한 낮췄다. 벚나무를 바라보거나, 프레임에 담긴 숲의 경사면과 수관에 비치는 빛과 잎의 모습을 즐기며 정원에 가까이 다가가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는 것이 최진범 작가의 말이다.

시간이 지나며 환경도 조금 달라졌다. 원래도 상태가 좋지 않던 뒤편 벚나무가 더 나빠지면서 해가 예상보다 많이 들게 된 것이다. 오래된 숲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한 정원은 숲의 쇠락까지 그대로 받아 안고 있다.

IV. 돌을 함께 굴린 사람들

시공에는 조경을 전공하는 대학생들과 일은 하지 않지만 정원에 관심 있는 이들이 알음알음 모여 참여했다. 다들 조경을 공부하고 열정이 있는 이들이었지만 이 작업 자체가 중노동이었다. 대부분 여학생이었는데도 남자들 못지않게 열심히 해 주어 든든했다고 최정민 작가는 말했다. 현장에는 돌이 많았다. 학생들은 최진범 작가와 함께 돌을 끌고 굴렸다. 흙을 퍼 나르고 무거운 식물도 함께 심었다.

“너무 미안하지만, 그만큼 고마움을 많이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 최진범

최정민 작가는 자신들도 완전한 전문가는 아니어서 서로 알려 주고 배우며 교류하는 시간이 즐거웠다고 했다. 디자인과 배치에서도 학생들에게 어느 정도 선택권을 주었다. 최진범 작가는 수정한 부분도 있지만 대부분 존중해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

“어설픈 부분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런 기회가 친구들에게도 좋은 경험이었길 바랍니다.”
— 최진범

그 말에서 이 정원이 헌정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다시 읽혔다. 40년 전 이 숲을 가꾼 시민과, 지금 이 숲에서 돌을 굴린 사람들 모두다.

돌담 아래 앉아 수반에 비친 빛을 본다. 그 빛은 40년 전에도, 앞으로 40년 뒤에도 숲 사이로 흐를 것이다.

경계를 흐려 정원이 숲으로 스며들게 한 것은, 이 정원이 감사를 표하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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