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서울국제정원박람회 매헌시민의숲 현장 르포. 작가정원의 시민 협업, 마을정원사가 지은 정원, 처음 삽을 든 학생과 시민 이야기.
매헌시민의숲은 올해로 개장 40주년을 맞았다. 10월 1일부터 27일까지, 이 숲에 정원 51개가 들어선다.
올해 서울국제정원박람회에서 달라진 점은 두 가지다. 작가정원 공모요강에 “시민과 함께 만드는 방안”을 계획서에 반드시 적으라는 조항이 새로 들어갔고, 서울시민정원사와 서울 25개 자치구, 춘천·울산·부산·경기도·진주의 정원사들이 서른한 개의 정원을 직접 지었다.

서울정원박람회는 2015년 월드컵공원에서 시작했다. 이후 여의도공원(2017~2018), 만리동 일대(2019~2020), 북서울꿈의숲(2022), 하늘공원(2023)을 거쳤고, 2024년 뚝섬한강공원에서 ‘국제’라는 이름을 붙였다. 2024년 누적 방문객은 약 780만 명이었고, 2025년 보라매공원에서는 정원 111개에 1,000만 명이 다녀갔다. 올해는 5월 1일 서울숲에서 문을 열었다. 정원 167개, 180일. 역대 가장 크고 가장 긴 박람회다. 2022년 7일이었던 기간이 180일이 됐고, 기업과 기관이 조성하는 기부정원은 50개까지 늘었다.
매헌시민의숲은 같은 박람회의 두 번째 무대다. 51개의 정원이 이곳에 자리를 잡게된다. 서울숲의 167개보다 적고, 기간도 27일로 짧다. 하지만 이번 박람회에서 주목할 것은 규모와 기간이 아니다. 바로 누가 만드는 가에 있다.

작가정원은 전문 작가가 설계하는 자리다. 하지만 올해는 작가와 시민이 함께 정원을 조성하도록 했다. 기존 정원박람회의 작가정원과 다른 새로운 문법이었고, 그래서 4개 작품이 어떠한 방식으로 작동했을지 궁금했다.
「그린큐레이션: 취향의 수확」의 김현정·이성원(작가정원)은 부추와 당귀가 피우는 꽃으로 정원을 채웠다. 먹는 작물이 지닌 원래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었다. 조성에는 시민정원사 여섯 명이 함께했다. 이들은 정원에 애정이 생겨 거의 매일 들렀고, 올 때마다 다른 정원사를 데려왔다. 그중 꽃차와 허브티를 전문으로 하는 티 테라피스트인 정원사가 정원을 한 바퀴 돌아보고 말했다. "레몬버베나로 차를 우리면 향이 좋을 것 같다. 가을에는 여기서 국화차를 마셔도 좋다" 기존 계획에 없던 새로운 제안이었다. 가을 보식 때 국화를 심고 다도 프로그램도 열 생각을 하게 됐다.
두 작가는 그런 일화가 “그동안 생각했던 정원의 모습”이었다고 했다. 완성된 정원이란 없기 때문이다. 시민정원사와 시민이 의견을 하나씩 건네면 그것이 다음 계절의 식재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벤치와 벤치 사이」의 송재안(작가정원)은 중국단풍이 곧게 선 숲에 여러 개의 선형 벤치를 놓았다. 벤치는 다리마다 독립기초를 따로 앉히는 구조라, 조금만 어긋나도 멀리서 보면 평행선이 틀어져 보인다.
이 정원에는 경북대, 단국대, 전남대, 전통문화대, 상명대, 건국대, 서울여대, 서울시립대의 학생 여덟 명과 시민정원사 한 명이 참여했다. 식재도 현장도 처음인 학생이 있었다. “알고 있는 것을 기초부터 하나하나 가르쳐주기 시작했어요.” 학생들은 목재에 오일스테인을 직접 칠했고, 벤치 사이 띠녹지에는 각자 식재 계획을 세우고 직접 심었다. 작가는 옆에서 세세히 봐주었다. 학생들과 천안의 농장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일주일 동안 식재 계획부터 실습까지 해본 학생들이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경험”이라고 말했을 때가 작가에게는 뭉클한 순간이었다고 한다.
또 이 정원에는 식재지마다 QR코드가 붙어 있다. 이것을 찍으면 학생들이 계획하고 기록한 내용이 나온다. 단순 아카이브를 넘어, 이곳을 관리하게 될 시민정원사와 연결하는 수단인 것이다. 해마다 정원이 어떻게 변하고 누가 돌보는지 시민들이 볼 수 있게 할 생각이다.

「머무는 결, 흐르는 빛」의 최진범·최정민(작가정원)은 “40년간 이어온 숲의 모습과 시민의 수고”에 헌정하는 정원을 만들었다. 돌담을 쌓고 반석과 수반을 놓았고, 정원과 숲 사이의 경계는 일부러 흐렸다. 시공을 업체에 맡길지 오래 고민하다 직접 하기로 했다. 함께한 사람들은 조경을 공부하는 대학생과 정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었고, 대부분 여학생이었다. 이 정원에는 돌이 많았다. “돌을 저랑 같이 막 끌고 막 굴리고 이러면서 진짜 굉장히 많이 고생을 했거든요.”
식물과 돌을 놓는 일에는 어느 정도 선택권을 줬다. “제가 수정한 것도 많지만 그래도 존중하고 유지해 놓은 것도 많아요. 어떻게 보면 어설픈 게 있을 수도 있긴 한데, 그런 기회를 준 것도 저한테는 즐거운 일이고.”
「매헌숲정이: 숲에서 식탁까지」의 김단비(작가정원)는 ‘숲정이’에서 출발했다. 마을 가까이에 숲을 두고 이용하면서 보호하던 우리 전통이다. 작가가 보기에 이 숲에는 자생수종이 적었다. 큰 나무 대부분이 칠엽수, 독일가문비, 중국단풍 같은 외래수종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참나무를 들였다. 큰 나무는 옮겨 심으면 빨리 죽을 수 있어서 키 60센티미터에서 1미터 사이의 어린 신갈나무를 심었고, 정원 한가운데에는 고창과 청주의 공사 현장에서 버려지던 참나무 그루터기를 놓았다. “내가 이용함으로써 한 부분에 숲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거기 때문에, 어떤 미안함의 상징이라고 해야 될까요.” 작가는 이 묘목들이 “40년 뒤 100년 뒤에 더 커져서” 서로 공생하는 숲으로 자라길 바랐다.
안내판에는 이 정원에 참여한 시민과 학생 네 명의 이름이 올라 있다. 초등학생들이 학교에서 도토리부터 키운 신갈나무 묘목을 가져와 심는 행사도 열렸다. 한 학생은 자기가 키운 묘목을 직접 심고 흙을 덮고 물까지 줬다. 작가는 그 아이들이 “나이가 들어서 이곳에서 자기가 심었던 경험들을 기억하지 않을까” 생각했고, 나중에 와서 자기가 심은 나무가 살아 있는지 봤으면 한다고 했다.
작가는 정원을 다 짓고 나면 빠지는 입장이다. 관리는 마을정원사들이 하지만 이후 사업소로 넘어가서, 시민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이번에는 주말에 식물을 심다 보면 검은 옷을 입고 흰 꽃을 든 사람들이 많이 지나갔다. 윤봉길기념관 바로 옆이고, 충혼탑과 삼풍백화점 위령탑도 가까운 자리다. “이 공간 또한 너무 무거운 슬픔이 아니라 가벼운 일상을 공유하고 안녕을 바라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시민정원사, 서울 25개 자치구, 춘천·울산·부산·경기도·진주의 정원사들이 정원 31개를 지었다.
서울시민정원사회는 「온정이 흐르는 정원」을 만들었다. 마을 어귀에서 사람을 맞는 장승과 좋은 소식을 전한다는 솟대를 세웠다. 자리가 음지라 밝은 꽃은 쓰지 못하고, 그늘을 잘 견디는 식물로 채웠다. 정회원이 300명쯤 되는 이 모임의 회원들이 9월 5일부터 완성을 앞둔 16일까지 틈틈이 와서 일손을 보탰다.
8기 회원(서울시민정원사 정원)은 짓는 일보다 지키는 일을 더 오래 이야기했다. “심는 것은 사실 그렇게 어렵지 않아요. 진짜 중요한 일은 그 사후 문제인 것 같더라고요.” 한 계절 지나 폐허가 되면 적지 않은 돈이 그냥 버려진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 공원이 없어질 때까지, 적어도 2주에 한 번씩은 와서 관리 활동을 하려고 한다”는 원칙을 세웠고, 회원들 역시 생각을 같이 했다.
동작구 ‘동작국화씨’ 팀(자치구 정원)은 동작구에 사는 시민정원사 여섯이 꾸렸다. 흑석동, 상도동, 대방동에서 온 이들은 같은 시민정원사회에서 안면있는 사이였다. “꽃 하면 아름답고 저희가 아름다운 사람으로 비칠지 모르지만, 노동력이 굉장히 많이 투여되는 작업"이라며, 땅을 뒤집어 고르고, 식물을 심고, 멀칭을 깔았다. “하나하나 올라갈 때마다 모양새가 달라져요. 우리가 옷을 새로운 걸 입고 한 번 거울을 보는 것처럼.” 일보다 어려운 건 시간문제였다. 각자 활동과 생업이 있어 다 같이 모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포구 마을정원사팀의(자치구 정원) 한 팀원은 이번에 함께 정원을 조성하면 관계가 돈독해졌다고 한다. 관심사가 비슷하고 가까이 사는 데다, 집에서 키우는 식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하늘공원 같은 곳으로 정원 답사도 함께 다녔다.
아쉬운 점도 있었다. “품과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이니 시와 자치구에서 마을정원사에 더 관심을 더 가져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시민정원사들도 점점 전문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지자체에서는 이들을 단순히 자원봉사자로만 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전문 인력의 갈래로 바라봐주길 바란다고도 했다.

학생정원과 시민정원에는 설계부터 시공까지 처음 해보는 사람이 많았다.
학생정원 「도시균근정원」을 만든 ‘뿌리사이’ 팀(학생정원, 김예슬·김현수)의 한 팀원은 조경 관리 실습을 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정원 일이 쉬울 줄 알았다고 했다. “면적도 작아서 쉽고 간단할 줄 알았는데 힘들구나, 많이 어려운 거구나 하고 깨달았다”고 토로했다. 균사를 표현한 띠를 코르텐강으로 하고 싶었지만 값이 너무 비싸서, 고민 끝에 식재 쪽 예산을 줄여야 하는 시행착오도 있었다.
서울시립대 학생 다섯이 모인 ‘틈새공략’ 팀(학생정원, 고지민·김정·박소현·오유림·임소윤)은 기반 공사에만 사나흘을 썼다고 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걱정을 해줄 정도로 강도높은 작업이었다.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은 팀원들이었다. “혼자 했으면 당황하고 포기했었을 것 같기도 한데, 또 머리를 맞대다 보니까 여러 의견이 많이 있어서 끝까지 계속 유지하고 나아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임연부: 숲으로 만나는 곳」을 만든 ‘빛과 그늘’ 팀(학생정원)는 이번이 두 번째 시공이었다. 이 숲이 서울에서 처음 조성된 숲 공원이라는 말을 듣고 설계를 시작했다. 임연부는 숲과 숲이 아닌 곳의 경계라는 뜻이다. 설계에는 하나에 44킬로그램짜리 징검돌 열두 개가 있었다. 혼자 들기엔 너무 무거워서 마지막까지 놓을지 말지 고민했는데, 정원 조성을 경험해보고 싶던 친구 두 명이 시공을 도와 열두 개를 모두 배치했다. 첫 시공 때는 정해진 예산에 맞춰 자재를 받아 시공만 했지만, 이번에는 예산안을 직접 짰다. “직접 돈을 만지고 그걸 통해서 운용을 한다는 거에서 좀 더 내 정원이라는 느낌도 들어서, 작업을 굉장히 즐겁게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직접 만들어 보니까 안에 있는 게 사실 하나하나가 다 생명체잖아요. 하루만 늦게 와도, 물을 잘못 주면 친구가 힘이 좀 약해질 수도 있고.”
김민재(시민정원, ‘오월가든’)는 관상원예를 전공한 지 10년이 넘었고 지금은 3D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한다. 이번 공모를 준비하며 정원 공부에 불을 지폈다. “가상으로 디자인할 때는 이렇게 하면 되고 저렇게 하면 되겠다 생각했는데, 막상 실제로 시공을 해 보니까 계획이랑 다르게 틀어지는 부분도 많네요. 날씨 영향도 있고.” 처음 콘셉트였던 명상도 요가 정원으로 바뀌었다. 전문 멘토의 조언도 큰 도움이 되었다. “사소한 거 하나하나 일일이 다 물어봐도 대답을 굉장히 잘 해 주시고.” 흙이 몇 포대 필요한지 같은 것까지 물었다. “하려고 마음만 먹으로 하게 됩니다.”
‘HCSA’ 팀(시민정원, 홍창석)의 두 사람은 건축 설계를 한다. 「시민의 숲, 숲의 흙」의 흙다짐 벤치는 조경도 시공도 처음이었다. “거푸집을 우리가 터지지 않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고민부터 시멘트 양은 얼마나 들어가야 되고 흙의 양은 얼마나 들어가야 되는지, 다 처음 해보는 것들이라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어요.” 금속 거푸집을 쓰고 싶었지만 예산이 없어 목공소에서 직접 짰다. “거의 몸으로 때웠다고 보시면 돼요.” 두 사람은 정원이 건축과 다르다고 했다. “건축은 그냥 뭔가 생명력이 없는 무언가라면 조경은 진짜 생명력이 있어서, 꽃을 심는 시기, 물을 주는 정도, 그늘, 햇빛 이런 것까지 다 고려를 해야 되다 보니까.”
김우인(학생정원, ‘신분당선’ 팀)은 이 공원 바로 앞에서 자랐다. 외갓집이 근처라 어릴 때부터 이 잔디밭을 뛰어놀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공을 차며 산책했다. 서울숲에서도 박람회가 열렸지만, 양재에서 가을에 또 열린다는 소식에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집 앞에 정원 하나 만들면 좋겠다. 할머니들이 좋아하시겠다.” 그의 팀이 만든 「아래의 기반」은 ‘아래’라는 말에 도시를 떠받쳐 온 시민의 삶과 보이지 않는 시간의 층위를 담았다.

10월 1일 오후 5시, 숲속무대에서 개막식이 열린다. 방문객은 정원 쉰한 개를 만나게 된다. 이곳 안내판에는 정원을 함께 만든 시민정원사와 학생, 시공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김민재(시민정원)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에 AI도 그렇고 기술적으로는 많이 발전하는데, 그만큼 사회가 말은 안 해도 조금씩 더 불안해지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럴수록 내 마음이 조금 더 편해질 수 있는 그런 공간들이 더 많아지면 훨씬 더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더라도, 나도 해볼 수 있을까, 해볼까, 이런 물음표만 있어도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