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단비 — 어린 참나무의 시간

참나무 묘목과 버려진 그루터기로 '숲정이'를 정원으로 옮긴 정원 작가, 김단비.

숲속 그루터기 곁에서 어린 식물을 살피는 정원 작가 김단비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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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전통의 마을 숲, 숲정이에서 온 정원이다. 숲을 이용하고 보호하며, 쓴 만큼 되돌려 심어 빚진 마음이 다시 숲이 되는 순환의 문화. 외래수종이 많은 매헌시민의숲에 어린 참나무를 심어 100년 뒤 우리 숲의 모습을 설계했다. 버려진 참나무 그루터기는 미안함의 상징으로, 검은 비석은 마을의 안녕을 비는 자리로 놓았다.

긴 돌 테이블과 사각형 목재 의자가 놓인 매헌숲정이의 마을마당
'마을'의 개념으로 앉힌 마을마당. 긴 돌 테이블 둘레에 사각형 목재 의자가 놓이고, 뒤편으로 그루터기와 자연석이 마을과 숲 사이의 경계를 이룬다. 도시락을 펼치고 사람을 만나는 사랑방이 되기를 바란 자리다.
원형 마을마당과 숲정이, 어린 참나무 숲이 이어지는 매헌숲정이 조감도
설계 단계의 조감도. 원형의 마을마당을 낮은 울타리와 자연석이 두르고, 그 바깥으로 숲정이와 마운딩 위의 어린 참나무 숲이 이어진다.
도토리 사이에서 올라온 신갈나무 새싹과 나무 표찰
도토리가 흩어진 땅에서 올라온 어린 참나무. 나무 표찰에는 '신갈나무'라고 적혀 있다.
검은 비석과 참나무 그루터기가 서 있는 정원 한가운데
정원 한가운데 선 검은 비석과 참나무 그루터기. 눕힐지 세울지 오래 고민한 끝에 마을의 안녕을 비는 비석으로 세웠다.

I. 숲정이라는 오래된 마을

매헌시민의숲에서 앞으로 자신의 정원뿐 아니라 많은 정원이 40년 된 큰 나무들과 함께 어떤 역할, 어떤 시간으로 이어져야 할지를 그는 먼저 고민했다. 그러다 떠올린 것이 '숲정이'라는 우리 전통이었다. 숲정이는 마을 가까이에 있어 이용하고 보호하며 살아온 마을 숲이다. 도토리를 주워 묵을 쑤고, 참나무 장작을 캐 아궁이에 불을 때고, 그러면서도 다시 도토리를 심어 보호하며 미안한 마음을 갖는 문화 전체를 그렇게 부른다. 숲은 삶의 배경이 아니라 삶 그 자체였다.

“숲은 누구의 것도 아니면서 모두의 것이었다.”
— 김단비, 작품설명서에서

지나던 시민이 원래 아름다운 곳을 정원이라며 훼손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말을 종종 건넸다고 한다. 그는 그 우려에 답하고 싶었다. 이 정원들 하나하나가 결국 40년, 100년 뒤를 바라보는 정원이라는 것을.

II. 세 겹의 경계

설계는 땅을 세 구역으로 나누는 데서 시작했다. 사람이 들어와 앉는 마을마당, 그 바깥을 감싸는 숲정이, 그리고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숲의 구역. 마을마당은 전체의 4분의 1이 채 되지 않고, 나머지는 어린 숲의 자리다. 마을과 숲 사이에는 경계가 세 겹으로 놓인다. 낮은 싸리울타리로 세운 마을울타리, 사람의 발걸음으로부터 숲을 한 번 더 보호하는 완충지대 숲정이, 자연석과 고사목, 찔레와 산초나무로 이루어진 숲어귀. 사람의 영역이 끝나고 숲의 시간이 시작되는 경계다.

숲의 구역은 도면에 '비개입구역'이라고 적혀 있다. 관리하지 않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숲의 변화를 관찰하는 구역이라는 뜻이다. 마을마당의 포장에는 시멘트를 쓰지 않았다. 마사토를 다진 흙길이고, 경계부는 자연석과 죽은 나무줄기로 유실을 막아 시간이 지나며 숲 가장자리로 스며들게 했다.

매헌숲정이 기본계획도. 마을마당과 등고선으로 표시한 마운딩, 어린 참나무 숲의 구역
매헌숲정이 설계안. 등고선으로 표시한 마운딩이 마을마당 뒤편의 숲의 구역을 감싼다.

III. 어린 참나무의 시간

정원의 메인 수종은 참나무다. 신갈나무와 상수리나무 같은 어린 묘목을 심었다. 그의 설명으로는 우리 숲과 산의 수종 대부분이 참나무인데, 매헌시민의숲의 큰 나무는 칠엽수, 독일가문비, 중국단풍 같은 외래수종이 많다. 큰 나무를 그대로 옮기면 빨리 죽을 수 있어, 어린 참나무를 심어 원래 우리 숲의 모습대로 풍경을 조금씩 바꿔 보자는 취지였다.

어린 참나무만 단독으로 심지 않았다. 교목 묘목과 관목, 초본, 사초류가 층위를 이루게 했고, 어린 교목을 큰 교목 아래 초화류처럼 산발적으로 배치해 숲에서 자연스럽게 생긴 후계목 군락처럼 보이도록 했다. 그 아래에는 참취, 곰취, 방풍나물, 참당귀 같은 우리네 산나물이 자란다. 정원의 부제 '숲에서 식탁까지'는 이 하층에서 나온 말이다.

돌 테이블 곁에서 허리를 숙여 식물을 심는 김단비 작가
돌 테이블 곁에서 허리를 숙여 식물을 심는 김단비 작가. 큰 돌과 그루터기 사이, 손이 닿는 자리마다 산나물과 어린 나무가 층을 이룬다.

묘목은 키가 60센티미터에서 1미터 사이다. 어린 나무가 자라 큰 나무가 되고, 어떤 것은 도태되고 어떤 것은 공생하며 사는 것이 숲의 문화다. 지금은 무릎 높이의 나무지만 언젠가 이곳의 새로운 숲이 될 것이다.

“이 어린 나무들이 40년, 100년 뒤 더 커져 다른 나무들과 경쟁하고, 일부는 도태되더라도 서로 공생하는 숲으로 자생했으면 합니다.”
— 김단비, 정원 작가

IV. 비석, 그루터기, 그리고 2086년의 숲

정원 한가운데에는 검은 비석이 서 있다. 정원 조성은 이 돌 하나를 두는 데서 시작됐다. 시민들이 원래 여기 있던 돌이냐고 물을 만큼 자연스럽지만, 그가 직접 고르고 배치한 것이다. 눕힐지 세울지 오래 고민한 끝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비석으로 세웠고, 어떤 이는 염원이 느껴진다고, 신비롭다고 했다. 비석 곁에는 '숲정이선돌'이라 이름 붙인 긴 돌 테이블이 놓였다. 마을의 상징이자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다. 설계도에는 이 테이블에 새기려던 문장이 남아 있다. 이 장소는 2086년의 숲입니다.

그루터기는 참나무의 뿌리다. 매헌시민의숲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고창과 청주의 도로공사와 건설 현장에서 버려지는 것을 받아 온 것이다. 처음에는 거칠어 보여 다들 염려했지만, 시공하는 분들이 뿌리 상태 그대로 배치해 설계보다 더 잘 나왔다. 숲정이는 참나무를 이용하고 보호하는 문화이지만, 이용한다는 것은 숲 생태계의 한 부분을 파괴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루터기는 그 양면을 한자리에 놓는 장치다.

뿌리 상태 그대로 심은 참나무 그루터기와 발치의 어린 식물
뿌리 상태 그대로 심은 참나무 그루터기. 거칠어 보여 다들 염려했지만 자리를 잡고 보니 설계보다 더 잘 나왔다.
발치에서 어린 식물이 올라온다.
그루터기와 자연석 사이에 낮은 정원등이 서 있는 마을마당 가장자리
그루터기와 자연석이 마을마당 가장자리를 따라 이어진다.
돌 사이에는 낮은 정원등이 서 있고, 자갈과 나무껍질은 숲 가장자리로 스며든다.
“미안함의 상징으로 정원에 함께 넣고, 그 옆에 어린 참나무를 심었습니다. 시민들이 숲정이의 마음을 느꼈으면 했습니다.”
— 김단비

정원에는 테이블 두 곳과 사각형 목재 의자 일곱 개가 놓여 있다. '마을'의 개념으로 설계한 자리다. 도시락을 펼치고 사람을 만나는 사랑방이 되길 바란다. 시민정원사에게는 날씨와 개화, 생육 상태를 적는 '정원노트'가 주어진다. 이용보다 관찰, 체험보다 기록. 설계서가 시민 참여를 요약한 한 줄이다.

돌 테이블 위에 놓인 도토리와 열매, 나무껍질 접시와 나무 주걱
돌 테이블 위에 도토리와 열매, 나무껍질 접시와 작은 나무 주걱이 놓였다.
정원의 부제가 '숲에서 식탁까지'이다.
나무껍질과 잔가지로 짠 작은 식탁 위의 이끼와 솔방울, 붉은 열매
나무껍질과 잔가지로 짠 작은 식탁 위에 이끼와 솔방울, 붉은 열매가 올랐다.
도토리를 주워 밥상에 올리던 숲정이의 삶을 손바닥만 한 크기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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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중에는 초등학생들이 학교에서 도토리부터 키운 신갈나무 묘목을 가져와 직접 심는 행사가 있었다. 한 아이가 자기 묘목을 심고 흙을 덮고 물까지 주는 모습을 그는 보았다.

“프로그램 자체는 일회성이었지만, 그 학생이 나이가 들어서도 이곳에서 자기가 심었던 경험을 기억하지 않을까 하는 따뜻한 기대가 있습니다.”
— 김단비

정원이 문을 연 뒤 작가는 현장에서 빠지고 관리는 사업소로 넘어간다. 그래서 정작 시민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다는 점이 아쉬웠다. 서울국제정원박람회가 앞으로도 시민 참여가 큰 박람회로 이어지기를 바란다는 것이 그가 서울시에 건네는 말이다.

작업 중 그가 본 장면이 하나 더 있다. 주말에 식물을 심다 보면 검은 옷에 흰 꽃을 든 이들이 많이 지나갔다. 이곳은 윤봉길 기념관 바로 옆이고, 충혼탑과 삼풍백화점 위령탑도 가까이 있다. 그는 일상이 무너졌을 때 시민들이 이 공원에서 가족을 위로하고 안녕을 비는 것이라고 짐작했다.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세운 비석이, 그가 알지 못한 채 이미 그 자리에 맞는 돌이었던 셈이다.

“무거운 슬픔이 아니라 가벼운 일상을 공유하고 안녕을 바라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김단비

숲은 빌려 쓰고, 마음은 돌려주는 것. 세워진 비석 곁에서 어린 참나무는 이제 막 자라기 시작했다.

지금 무릎 높이인 참나무는, 아무도 그 나이를 대신 살아줄 수 없다. 정원은 그저 그 시간을 지킬 자리를 마련해 두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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