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재지마다 QR코드를 달아 정원의 계절을 기록하고, 그 기록으로 관리까지 잇는 정원 작가, 송재안.
완공 이후를 먼저 생각한 정원이다. 중국단풍 숲을 해치지 않는 수평의 벤치를 놓고, 벤치 사이 여섯 개의 띠녹지를 작은 숲 연구실로 삼았다. 식재지마다 QR코드가 있어 학생들의 식재 계획이 담기고, 앞으로는 시민정원사의 관리가 여기에 이어진다.
대상지에 처음 섰을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비어 있는 땅이 아니라 이미 꽉 찬 숲이었다. 중국단풍이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었고, 그 숲을 가장 잘 살리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가장 먼저 정한 것은 무엇을 더할지가 아니라 무엇을 해치지 않을지였다.
숲을 살리면서도 사람이 이용하는 데 해가 되지 않을 것. 그리고 새로 놓은 것이 마치 원래부터 거기 있었던 것처럼 보일 것. 그가 스스로에게 건 두 가지 조건이었다. 하늘로 곧게 뻗은 줄기들과 직각으로 만나는 정갈한 선을 놓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다만 하나의 강한 일직선이 아니라 여러 개의 벤치로 나누었다. 쉴 수 있는 자리를 여럿 만들고, 그 사이에 여러 환경을 담아내기 위해서였다.
정원은 일직선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 평평했던 동선의 초입에는 완만한 둔덕을, 중간에는 선큰을 만들어 식물이 자리 잡을 환경을 다양하게 나눴다. 중국단풍을 최대한 해치지 않는 선에서 지형을 건드려, 교차해 오가는 동선을 조금 더 다이내믹하게 경험하도록 한 것이다. 마운딩과 선큰이 교차 배치되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벤치마다 다리마다 독립된 기초를 갖는다.
시공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평행이었다. 수평이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가까이서는 보이지 않던 틀어짐이 멀리서 드러난다. 작은 오차가 결국 큰 오차로 보이기 때문에 그것이 가장 큰 난이도였다고 그는 말했다. 정갈한 선을 놓겠다는 다짐은 곧 오차를 허락하지 않겠다는 다짐이기도 했다. 선큰 구간에는 물이 고이기 때문에 배수에도 공을 들였다. 벤치는 미송으로 짰다. 비싼 나무는 아니라고 그는 담담히 말했다. 대신 중국단풍과 가장 잘 어울리는 오일스테인 색을 오래 찾았고, 결국 '뉴트럴'이라는 이름의 색을 골랐다.
이번 공모의 주제는 시민과 학생의 참여였다. 벤치 사이의 띠녹지 여섯 개는 학생 여덟 명이 각자 식재 계획을 세우고 직접 심은 자리다. 그는 곁에서 봐주는 역할만 했다. 벤치의 오일스테인도 학생들이 칠했다. 칠하는 법과 옅게 닦아내는 법만 알려주었더니 다들 잘 따라 해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학생들의 출발점은 저마다 달랐다. 정원드림 프로젝트를 경험한 학생도 있었고, 식재도 현장도 처음인 학생도 있었다. 그는 자신이 아는 것이 더 많으니 베이스부터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착공 전 답사에서 그가 가장 크게 본 것은 빛이었다. 다른 작가정원 대상지와 달리 이곳은 빛이 잘 드는 편이었고, 특히 입구 쪽에 빛이 많이 들었다. 뒤로 갈수록 강한 음지가 형성되어, 벤치에 앉을 때마다 다른 빛과 그림자를 느낄 수 있다.
작업이 끝날 무렵 그는 학생들에게 힘든 경험이 되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돌아온 답이 이번 작업에서 가장 오래 남았다고 한다.
“천안까지 농장 투어를 다녀오고 일주일 동안 식재 계획부터 실습까지 다 해봤는데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고 말하는 순간, 제일 뿌듯하고 울컥했습니다.”
— 송재안
각 식재지에는 QR코드가 붙어 있다. 찍어 보면 학생들이 세운 계획과 사례 조사가 나오고, 작가에 대한 '뒷담화'까지 적혀 있다. 그는 재미있게 둘러보시라고 웃으며 권했다.
식재는 구조가 되는 식물을 먼저 정하는 방식으로 짰다. 식재를 시작할 때는 먼저 구조부터 잡으라는 것이 그가 학생들에게 가르친 첫 원칙이었고, 각 식재지마다 그 구조가 되는 식물이 있다. 첫 번째 베드는 꽃범의꼬리·배롱나무·목련류가 뼈대를 이루고, 두 번째에는 뻐꾹채처럼 흔치 않은 풀이 자리한다. 침수 구간에는 제비꼬리풀이, 마운딩 구간에는 땅두릅이 있다. 땅두릅은 시민들이 따 갈까 걱정되어 이름표를 일부러 다른 이름으로 달았다고 한다. 숫잔대도 구조 식물로 자리하고 있으니 식물 표찰을 따라 둘러보면 재미있을 것이라는 것이 그의 안내다.
정원은 문을 여는 날 완성되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식물은 자리를 잡기도, 시들거나 도태되기도 할 것이다. 그는 그 변화를 감추지 않기로 했다. QR코드를 통해 시민정원사의 관리가 이어지도록 연계할 계획이다.
“시민들이 해마다 QR을 찍어보며 정원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정원사들이 어떻게 돌보는지 보면서 정원과 조금 더 가까워지셨으면 합니다.”
— 송재안
수직의 숲에 수평을 놓고, 구조를 세운 뒤 식물을 얹고, 자신의 손을 학생들의 손으로 바꾸어 놓은 정원. 그가 처음 학생들에게 가르친 말과 이 정원의 벤치는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먼저 구조를 잡을 것. 이 정원의 벤치는 그 구조가 사람의 자리로 나타난 것이다.
벤치와 벤치 사이에서 정원은 계속 자란다. 그 사이를 지나는 사람들의 걸음과 함께.
이 정원의 도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음 줄은 시민정원사가 이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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